필러로 돌아가기

인간의 재정의: 생물학과 자동화의 경계

2024년 3월 19일 // 6 분 읽기 // The Human Being

모든 주요 기술은 우리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는 방식을 조용히 다시 써 왔다. 문자는 기억을 외주화했고, 인쇄술은 필경사를, 계산기는 산술을 대신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지 물었고, 매번 답은 조금씩 달라졌다. 오늘 이 질문은 더 강한 힘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도구들은 무게를 들어 올리거나 정보를 옮기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글을 쓰고, 대화하고, 요약하고, 조언한다. 한때 우리만의 영역으로 여겼던 곳에서 활동한다.

진화적 전환

컴퓨팅 체계가 인간의 작업 흐름에 통합되면서, 인간 고유의 특성에 대한 정의를 새로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오직 우리만 할 수 있는 일로 자신을 정의했다. 언어를 쓰고, 추상적으로 사고하고, 예술을 창작하고, 문제를 푸는 것 말이다. 그 목록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제 시스템은 유창한 글, 그럴듯한 이미지, 작동하는 코드를 만들어 낸다. 이를 위협으로 읽기 쉽지만, 압박 테스트로 읽는 편이 낫다. 어떤 특성을 기계가 재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결코 우리 존재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짚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현재의 AI 시스템은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인식하고 생성하는 데 매우 뛰어나다. 그러나 그것들은 몸도, 어린 시절도, 죽음도 없으며,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결과에 걸린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들이 어떤 형태의 내적 경험을 지니는지는 연구자와 철학자들이 여전히 논쟁하는 미해결 질문이며, 지금 누구도 자신 있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반면 실질적 효과는 분명하다. 인지 노동의 점점 더 많은 몫을 소프트웨어가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은 어디에 설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전환”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만, 반드시 엄밀한 의미의 생물학적 진화는 아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세대를 거쳐 작동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수천 년이 아니라 수년 단위로 움직이는 문화적·기술적 변화에 더 가깝다. 그 속도가 진짜 도전이다. 제도와 학교와 습관은 도구보다 느리게 변한다.

생물학적 정체성

합성 에이전트가 대화의 결을 흉내 낼수록, 생물학적 실재성과 깊은 집중이 값진 차별점이 된다.

유창한 대화가 값싸지면, 유창함은 더 이상 어떤 것의 증거도 되지 못한다. 이메일의 문장, 통화 속 목소리, 영상 속 얼굴이 생성된 것일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 희소해지는 것은 검증된, 몸으로 존재하는 실재성이다. 진짜 사람이, 진짜로 걸린 것을 안고, 반대편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 결과 두 가지 역량이 가치를 얻는다. 첫째는 현존, 즉 물리적으로 그 자리에 있으면서 온전한 주의를 기울여 듣고, 자신이 하는 말의 무게를 지는 것이다. 둘째는 깊은 집중, 즉 자극을 찾아 헤매지 않고 어려운 문제를 오랫동안 마음에 붙들어 두는 능력이다. 둘 다 훈련할 수 있고, 둘 다 주의력을 최적화한 플랫폼에 의해 침식되고 있으며, 둘 다 위조하기 어렵다.

  1. 물리적 상호작용의 가치를 인식하기. 몸은 글자가 담지 못하는 정보를 전한다. 어조, 자세, 타이밍, 함께 나누는 침묵, 공간의 느낌 같은 것들이다. 직접 만나고, 함께 식사하고, 누군가와 걷고, 나란히 일하는 것은 화면이 부분적으로만 재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신뢰를 쌓는다. 실천으로는 대면 시간을 의식적으로 지키는 것을 뜻한다. 친구와 동료와의 정기적인 대면 모임, 기기 없이 하는 가족 의식, 스포츠나 음악, 봉사, 지역 모임 같은 공동체 활동이 그렇다. 요리, 만들기, 정원 가꾸기, 공예 같은 손을 쓰는 기술을 그 자체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것들은 사고를 물질 세계와 연결하기 때문이다.
  2. 비알고리즘적 공간을 지키기. 알고리즘적 공간은 시스템이 당신이 무엇을, 어떤 순서로, 얼마나 오래 보는지를 정하는 곳이다. 비알고리즘적 공간은 당신이 선택하거나, 우연과 다른 사람들이 선택하는 곳이다. 어슬렁거리는 서점, 예정에 없던 곳으로 흘러가는 대화, 공책, 긴 산책, 도서관 서가를 떠올려 보라. 이런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추천 시스템이 우리의 노출을 이미 우리를 사로잡는 것 쪽으로 좁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며, 새로움과 지루함과 놀라움이야말로 많은 창의성이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키려면 삶의 일부 영역을 명시적으로 최적화하지 않도록 설정하라. 휴대폰 없는 시간, 종이책, 일정 없는 오후, 지표가 붙지 않은 취미가 그렇다. 또한 피드가 정하게 두지 말고 직접 구독, 신뢰하는 사람, 원문 자료처럼 스스로 고른 출처를 통해 정보를 찾아라.
  3. 복합적 처리로서의 직관 기르기. 직관은 흔히 신비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오랜 경험으로 쌓인 빠르고 무의식적인 패턴 인식으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뭔가 잘못됐음을 감지하는 노련한 의사, 문단이 어딘가 어긋났음을 느끼는 베테랑 편집자는 수천 시간의 몸에 밴 실천에서 끌어낸다. 그런 직관은 여러 번 연습하고 정직한 피드백을 받은 영역에서만 신뢰할 수 있다. 틀릴 수 있고 편향에 취약하므로 증거로 검증해야 한다. 핵심은 그것이 고투와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어려운 과제를 모두 기계에 넘기면, 그것을 만들어 내는 연습을 건너뛰게 된다. 직관을 예리하게 유지하려면 어려운 첫 시도를 직접 하고, 실수를 돌아보고, 도구는 생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는 데 쓰라.

포스트휴먼의 풍경

미래는 명시적인 전략을 요구한다. 중앙화된 플랫폼과 무모하게 합쳐지거나, 사적이고 독립적인 생물학 우선 구조를 설계하거나.

이 구도는 극적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기술에 관한 우리의 선택은 전략적이고, 표류 역시 하나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제시된 두 선택지는 다소 지나치게 극단적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극단에도 살지 않을 것이다. 더 유용한 관점은 의존의 스펙트럼이다. 각 개인과 공동체가 자신의 주의력, 기억, 데이터, 판단을 얼마나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에 맡길지 결정하는 것이다.

중앙화된 쪽의 위험은 구체적이다. 소수의 기업이 당신의 정보, 소통, 업무, 그리고 점점 더 당신의 사고까지 중개하면, 그들은 당신에 대한 지렛대를 얻는다. 당신의 데이터는 프로파일링과 영향력 행사에 쓰일 수 있고, 서비스는 약관을 바꾸거나 사라질 수 있으며, 시스템의 이해관계는 당신과 다를 수 있다. 악의가 없더라도 의존은 취약성을 낳는다.

반대쪽의 위험도 실재한다. 완전한 철수는 실용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 도구들은 의료, 교육, 접근성, 과학적 발견을 개선할 수 있으며,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은 기회를 잃고 사회생활에서 배제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생물학 우선”이 기술에 적대적이라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간의 필요가 조건을 정한다는 뜻이어야 하며, 그 반대가 아니다.

균형 잡힌 전략은 의도적이고 개인적이다. 여기서 나오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 중요한 것은 소유하라. 파일, 글, 사진, 연락처의 사본을 서비스 간에 옮길 수 있는 형식으로 직접 보관하라.
  • 이식 가능하고 개방된 도구를 선호하라. 가능하면 개방형 표준, 로컬 저장, 손쉬운 내보내기를 갖춘 도구를 골라, 모든 것을 잃지 않고 떠날 수 있게 하라.
  • 공유를 제한하라. 개인, 의료, 금융 데이터는 민감하게 다뤄라. 개인정보 약관을 읽고, 업로드하는 양을 최소화하고, 편의를 위해 무엇을 내주는지 이해하라.
  • 의사결정 고리에 사람을 남겨라. 건강, 돈, 안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결정에 대해서는 사람, 가급적 당신 자신이 결과를 이해하고 책임질 수 있게 하라.
  • 지역의 회복력을 길러라. 디지털 계층이 멈춰도 작동하는 기술, 우정, 공동체 네트워크를 가꿔라.
  • 좋은 거버넌스를 지지하라. 개인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투명성, 책임성, 경쟁, 데이터 권리에 관한 규칙도 중요하다. 그런 논쟁에 참여하는 것이 전략의 일부다.

소프트웨어 너머에는 인정할 만한 더 큰 지평이 있다. 신경 임플란트나 첨단 생명공학처럼 신체와 뇌에 직접 인터페이스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며, 이미 일부 마비나 감각 상실 환자를 돕고 있다. 이들은 동의, 프라이버시, 평등, 정체성에 관한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런 결정은 기본값으로 정해지게 두지 말고, 사회가 공개적으로 그리고 일찍 내려야 한다.

물어볼 만한 질문

고정된 답을 찾기보다, 이 질문들을 주기적 점검으로 삼아라.

  • 내 일과 삶의 어느 부분이 기계적이며, 어느 부분이 판단과 관계와 돌봄을 요구하는가?
  • 내가 읽고 보고 믿는 것 중 얼마나 내가 선택했고, 얼마나 나를 위해 선택되었는가?
  • 도구 없이도 내 결론을 설명하고 옹호할 수 있는가?
  • 할 수 있더라도 자동화하기를 거부할 것은 무엇인가?
  • 내 주의력에서 누가 이익을 얻으며, 나는 그 거래에 편안한가?

4주 실천

  • 1주 차, 관찰: 화면 시간 중 얼마나 내가 선택한 것이고 얼마나 주어지는 것인지 기록하라. 어떤 상호작용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고 어떤 것이 고갈시키는지 적어라.
  • 2주 차, 보호: 비알고리즘적 공간을 두 개 만들어라. 휴대폰 없는 아침 한 시간, 매주 계획 없는 산책이나 서점 방문 같은 것들이다.
  • 3주 차, 연습: 매일 어려운 과제 하나를 어떤 도구도 보기 전에 처음부터 직접 하라. 끝난 뒤 자신의 결과를 도구의 결과와 비교하라.
  • 4주 차, 소유와 연결: 중요한 파일을 개방형 형식으로 백업하고, 개인정보 설정을 점검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정기적인 대면 시간을 잡아라.

결론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결코 하나의 답을 가진 적이 없으며, 기계나 철학자만으로 정리되지도 않을 것이다. 현재가 주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기꺼이 넘길지 더 정직하게 결정하라는 유난히 날카로운 촉구다. 전략은 맹목적 융합도 전면적 후퇴도 아니다. 몸에 머물러 현존하고, 주의력을 지키고, 진짜 판단력을 기르고, 의존할 대상을 눈을 뜨고 선택하는 더 느린 작업이다. 기술은 계속 변할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사람은, 적어도 지금은, 여전히 우리다.